고려말기에 등장한 신흥사대부는 조선왕조의 건국에 공헌한 개국공신들이었다. 송나라의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던 신흥사대부의 일부가 고려 말 정치적 주도 세력을 형성하여 이성계를 새 왕조의 왕으로 추대하였다. 유학과 예악에 투철한 정도전을 비롯한 개국공신들은 새 왕조의 건국과 함께 유교적 정치이념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였고, 건국 초 새로운 악가제정 때에도 참여하였다.
건국 초기의 악가제정은 유가의 예악사상에 의한 아악정비의 전주곡이었다. 제3대 임금 태종의 등극까지 다사다난하였던 정치적 소용돌이가 차츰 안정되자, 유가 정치 이념의 실천작업인 아악정비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시기가 제4대 세종대왕시절이었다.
<건국 초기의 신제 악장과 유가의 음악사상>
1402년에 새 왕조의 조회악과 연향악이 제정되었다. 제정되기 이전에는 고려의 조회악과 연향악이 연주되었다. 조선왕조의 건국과 더불어 새 왕조의 창업을 송축하거나 찬양하는 신제 악장이 창작되었는데 신제 악장을 주도적으로 창제한 개국공신은 정도전과 하륜이다.
두명의 개국공신이 제정한 신제 악장을 전악서와 아악서의 악공이 관현반주에 맞추어 노래로 불렀다. 문신인 정도전이나 하륜은 악가의 한문가사를 창제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새로 창제된 악가의 선율은 고려의 기존 향악곡, 또는 주희의 『의례경전통해』에 전하는 곡조를 차용하였다.
조선왕조의 정치이념을 개국공신들은 성리학이라는 신유학에서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그 결과로 유가 예론의 핵심인 오례의가 건국 초기에 정립되었다. 유가사상에서 예는 현실 사회의 질서로 설명되었으므로, 오례의가 새 왕조에서 추구하려는 정치질서의 기본구조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조선왕조에서 오례의는 새 왕조의 정치질서 및 왕권의 절대 우위를 강조하는 명분논리의 근거가 되었다.
유가의 음악사상은 오례의 중에서 천신, 지신, 인신의 제사와 관련된 길례에 잘 반영되었고, 특히 종묘제례악이나 문묘제례악은 유가의 음악사상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다.
1) 오례의에 반영된 유가의 음악사상
(1) 선초 오례의의 유래와 종묘제례악
오례가 중국에서 최초로 등장한 시기는 진나라때다. 또한 오례를 왕권의 논리이자 국가 정치질서의 축으로 정비한 때가 당나라 시절이다. 당대의 『개원례』 이래로 중국의 역대 왕조는 물론이고, 고려왕조와 조선왕조에서도 오례의가 국가질서 및 왕권을 강조하는 명분논리의 근거로 자리잡았다.
길례, 가례, 빈례, 군례, 흉례의 다섯 예를 오례라고 한다. 오례를 갖춘 의례인 오례의는 왕권정치에서 왕에게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는 의례체제다. 길례는 천신, 지신, 인신에게 제사하는 의례고, 사회계층의 만민들이 서로 화친하도록 만드는 의례가 가례다. 빈례는 국가 간의 친화를 목적으로 제도화시킨 의례고,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만든 의례가 군례며, 흉례는 국가적 재화, 질병, 사망의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서 만든 의례다.
오례의는 고려시대때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수용되었다. 고려왕조의 오례의는 의종때의 『상정고금례』 및 『고려사』「예지」에 정리되었다. 이후 고려의 오례의와 명나라 『홍무예제』를 참작하여 정리한 것이 『세종실록』 소재의 「오례의」고, 건국 초의 오례의를 집대성한 책이 성종때 편찬된 『국조오례의』이다.
『세종실록』 소재의 「오례의」 중 길례는 태종때 설립된 의례상정소에서 허조가 명나라의 『홍무예제』를 참작하여 완성시킨 것이다. 길례 이외의 가례, 빈례, 군례, 흉례는 세종대왕의 명을 받은 정척과 변효문이 찬정하였다. 종묘와 사직 관련의 제사의식이 『세종실록』 소재 「길례서례」와 「길례의식」에 전한다.
당시 종묘제례악은 조선왕의 절대적 권위를 상징한 오례의 중 길례에서 가장 중요시되었던 제례악이다. 세종조의 종묘제례악에는 선초 유학자 출신의 관리가 지녔던 유가의 음악사상이 잘 반영되었다.
(2) 종묘제례악과 유가의 음악사상
『세종실록』 소재의 「길례서례」를 보면, 종묘와 사직은 대사에 들었고, 선농, 선잠, 우사, 문선왕, 풍운뢰우, 조선단군, 후조선시조기자, 고려시조는 중사에 들었다. 왕이 친히 참석하는 종묘제례의식에서 제례악과 일무는 신관, 궤식, 아종헌, 음복 절차에서만 연주되었다.
종묘제례악은 제례절차에 따라서 악기로 연주하는 기악과 조상의 공덕을 찬양하는 악장을 노래부르는 성악으로 구성되었다. 등가와 헌가에서 연주된 제례악곡은 승안지악, 경안지악, 숙안지악, 옹안지악, 수안지악, 서안지악이다.
등가의 악장은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 목조의 신위에서 부르는 순녕지곡, 증조부익조 신위의 소녕지곡, 할아버지 도조 신위의 정명지곡, 아버지 환조 신위의 위명지곡, 그리고 태조 이성계 신위의 소명지곡이다.
종묘제향때 추는 일무는 문무와 무무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세종 당시에 문무는 열문지무였고, 무무는 소무지무였다. 유가의 음악사상을 상징하는 종묘의 악가무는 종묘제례악에 충실하게 반영되었고, 그런 종묘제례의 악가무 전통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유가 악론을 집대성한 『예기』의 「악기」에 의하면, '악'은 기악과 성악 그리고 무용, 즉 악가무를 포괄하는 상위개념의 용어이다. 그러므로 위 표에 정리된 종묘제례악에 포함된 악가무는 유가 악론의 핵심을 충실하게 반영한 증거이다. 이렇게 유가의 음악사상을 반영한 세종조의 종묘제례악은 세조때 정대업과 보태평으로 대치되는 역사적 변천과정을 거쳤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악사] 조선전기의 향악 (0) | 2022.05.20 |
---|---|
음악사] 세종조의 음악 (0) | 2022.05.19 |
음악사] 고려의 고취악과 기악 (0) | 2022.05.18 |
음악사] 대성아악의 등장과 그 향방 (0) | 2022.05.17 |
음악사] 고려의 당악과 당악기 (0) | 2022.05.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