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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음악사] 고고학자료에 보이는 백제악기

by 정적인 바둑이 2022.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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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학계에 알려진 백제악기와 관련된 고고학자료는 계유명아미타불삼존석상(계유명석상) 및 금동용봉봉래산향로(금동향로, 백제대향로, 백제향로), 그리고 대전 월평동 출토의 양이두 등 3가지이다. 계유명석상은 백제의 멸망(660년) 이후인 673년에 전씨 성을 가진 백제유민이 건립한 석상이므로, 그 고고학자료의 제작 시기는 남북국시대에 해당된다. 그렇지만 멸망 이전의 7세기 무렵 백제사회에서 연주된 악기가 그 석상에 부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72년 백제 무령왕릉의 발굴 이후 최대의 고고학적 성과로 평가되는 백제향로는 1993년 12월 충남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되었다. 이 백제향로는 백제문화의 황금기였던 사비시대(538~660)에 제작되었기 때문에, 이 향로에 나오는 5가지 백제악기는 6세기와 7세기 초에 걸쳐서 사용된 것이다. 2개의 고고학자료는 외국문헌에 기록된 백제악기 및 그 이외의 악기 실물을 보여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1995년 대전 월평산성에서 발굴된 목제품의 보존 처리과정에서 서기 6세기 무렵의 백제 가야금이 있었다고 2000년도 1월 14일자 신문에 보도되면서 그 백제 현악기는 음악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백제의 가야금으로 추정되는 이 악기유물은 양이두 부분만이 출토되었다.

 

 1) 금동향로의 백제악기

 금동향로에 나오는 백제악기는 완함, 장적, 북, 거문고, 배소 등 5가지이다. 그런데 5개의 악기명은 학자에 따라서 약간 다르게 칭해지고 있다.

 5가지의 백제악기는 2개의 현악기(거문고, 완함), 2개의 관악기(장적, 배소), 그리고 1개의 타악기로 구분된다. 고구려로부터 수용한 백제의 거문고는 고대 일본조정에 소개된 후의 문헌에는 군후라는 악기명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백제향로의 거문고를 『수서』에 나오는 백제악기 중에 쟁 또는 중국 금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서양의 밴죠(banjo)처럼 생긴 백제의 완함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나오기 때문에, 그 완함은 삼국시대 거문고와 함께 백제에 수용된 현악기로 해석된다. 세로로 잡고 부는 장적의 일종인 백제의 관악기는 고구려의 여러 고분벽화에 나오므로, 그 관악기는 고구려의 장적과 역사적으로 관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의 장적처럼 몸통이 길지 않고 금동향로의 종적이 짧다는 점은 오히려 일본 쇼소인에 전하는 당나라의 척팔이나 『수서』에 나오는 백제악기 가운데 적과 관련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금동향로에 나오는 백제의 배소는 안악 제3호분의 벽화 및 집안 5회분 4호묘나 5호묘의 벽화에 나오는 소와 역사적으로 관련되었다고 보면, 고구려의 소를 백제에서 수용한 배소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백제의 북으로 명명된 타악기의 모양은 매우 특이하기 때문에, 그 타악기의 정체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연구가 뒷받침 되어야한다.

 

2) 계유명석상에 부조된 백제악기

 계유명석상에 부조된 7가지의 백제악기가 1973년 처음으로 학계에 소개된 이후, 그 백제악기의 명칭도 또한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칭해지고 있다.

 계유명석상에 부조된 7가지의 백제악기 중에서 관악기는 장적, 배소, 횡적, 생 등 4가지이고, 현악기는 거문고당비파 2 가지이며, 타악기는 요고가 있다. 이 7가지의 백제악기가 문헌에 나오는 백제악기와 일치하는 악기는 요고, 생, 횡적 3가지 뿐이고, 나머지 4가지(거문고, 장적, 배소, 당비파)는 중국문헌에 나오지 않는다.

 계유명석상의 거문고는 가로로 눕혀서 연주하는 지더(zither)류의 현악기이다. 그리고 백제의 장적 및 배소는 고구려의 장적 및 배소와 같은 계열의 관악기이므로, 3가지의 백제악기는 모두 고구려악기를 수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그리고 백제의 요고와 횡적은 고구려의 여러 고분벽화에 나오기 때문에, 고구려의 요고 및 횡적과 역사적 관계를 맺었다고 볼 수 있다. 백제의 이런 횡적이 고대 일본조정에 소개되어 후에 백제적인 구다라부에가 되었다. 이 구다라부에는 고구려의 횡적인 고려적, 곧 고마부에와 명칭 상으로 구분되었다. 백제의 당비파는 중국 당나라의 곡경비파를 수용한 것이며, 감은사지에서 출토된 청동제사리기에 나오는 당비파 계열의 봉수비파와 역사적으로 관련되었다.

 

3) 대전 월평동 출토의 백제 8현금

  (1) 대전 월평동 출토의 양이두

   1995년 대전 월평산성에서 백제의 현악기로 추정되는 악기의 양이두 부분만이 출토되었다. 양이두의 폭이 27.8cm이고, 길이가 9.6cm이며, 두께는 1.4cm 이다. 둥글게 외반된 모서리에 줄을 거는 여덟 개의 홈이 뚫려 있어 8현 짜리 현악기이며, 제작 시기는 대략 6세기라고 한다. 월평동 출토의 양이두는 생김새가 신라토우에 보이는 금과 일본 정창원, 곧 쇼소인 소장 신라금인 시라기고토, 그리고 『악학궤범』 소재의 가야금과 현행 정악가야금의 양이두와 비슷하다. 그리고 월평동 양이두의 크기는 아래의 표에 제시되었듯이 신라금과 정악가야금의 것보다 조금 작을 뿐이다.

 

  (2) 백제 8현금의 문제

   대전 월평동 출토의 양이두에는  8개의 줄 구멍이 뚫렸기 때문에, 이 현악기를 '백제 가야금'이나 '백제의 8현가야금' 또는 '백제금'이라고 서로 다르게 명명하였다. 가야금의 양이두 모양 때문에 가야금이라고 붙인 악기명은 나름대로의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가야금이라는 악기명이 본래 가야국의 금이라는 뜻이므로, 백제 가야금이라는 명칭은 재고되어야 한다.

 고대 일본조정에 신라인이 가야금을 소개하였기 때문에, 일본인이 시라기고토, 곧 신라금이라고 명명하였듯이, 백제의 금을 뜻하는 '백제금'이라는 명칭도 설득력이 있다. 그렇지만 백제금이라는 악기명은 일본문헌에 나오는 구다라고토라는 백제금과 혼동할 소지가 있다.

 그렇다면 백제의 8현 짜리 현악기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백제의 8현악기 또는 8현금이라는 명칭이 적합하다. 왜냐하면 장천 1호분에 나오는 5현 짜리 현악기를 5현금 또는 5현악기라고 명명하였고, 일본 쇼소인 소장의 7현 짜리 현악기를 7현악기로 명명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백제 8현금의 몸통 길이와 폭은 신라금이나 현행 정악가야금의 몸통보다 조금 짧고 좁다. 이 8현짜리 백제 8현금이 6세기 무렵에 제작되었으므로, 그 현악기가 광주 신창동에서 출토된 마한의 고대현악기나 변진의 고대현악기 또는 가야국의 가야금과 어떤 역사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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