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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음악사] 기악의 성장과 발전: 영산회상

by 정적인 바둑이 2022.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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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의 영산회상과 현행 영산회상>

* 현행 영산회상의 종류와 명칭

 영산회상은 조선후기 풍류방의 음악문화 중에서 실내악 편성의 대표적인 기악곡이다. 오늘날 연주되는 영산회상은 3가지가 있는데, 거문고가 중심이 되는 줄풍류, 향피리 중심의 대풍류, 그리고 줄풍류를 4도 낮게 이조한 평조회상이다. 넓은 뜻의 영산회상은 세 종류의 악곡을 모두 포함하지만, 좁은 의미의 영산회상은 줄풍류만을 뜻한다. 보통 영산회상이라고 하면, 이것은 거문고 중심의 줄풍류를 뜻한다. 조선후기 풍류방에서 연주된 영산회상도 좁은 의미의 영산회상 곧 줄풍류를 말한다.

 세 종류의 영산회상에는 영산회상이라는 곡명 이외 여러가지 이름이 사용되었다. 첫번째로, 줄풍류의 경우 거문고가 악기편성의 중심 악기이므로, 줄풍류를 거문고회상이라고 했다. 줄풍류는 거문고라는 현악기 중심으로 편성된 음악이기 때문에, 현악영산회상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 현악영산회상의 아명은 중광지곡이다. 줄풍류의 음량이 작기 때문에, 주로 풍류방에서 연주되었다.

 

 두번째로, 대풍류는 향피리 중심의 관악기 위주로 편성해서 연주한 영산회상이기 때문에, 대풍류를 관악영산회상 또는 삼현영산회상이라고 했다. 이 관악영산회상의 아명은 표정만방지곡이고, 이 아명을 줄여서 부른 곡명이 표정만방이다. 대풍류는 줄풍류에 비해서 음량이 크기 때문에, 이 악곡은 풍류방보다는 궁중정재의 반주음악으로 연주되었다.

 

 마지막으로 줄풍류의 변주곡으로 파생된 평조회상의 아명은 유초신지곡이고, 이 아명을 줄여 부른 곡명이 유초신이다.

 

* 양란 이전의 원래 영산회상

조선전기의 원래 영산회상은 기악곡이 아니고 성악곡이었다. 『악학궤범』 권5에 의하면, 영산회상은 학연화대처용무합설이라는 정재공연 때 영산회상 만기를 연주하면 여기와 악공이 '영산회상불보살'이라는 일곱 글자의 노래로 부른 불가 계열의 성악곡이었다. 이 정재공연에서는 영산회상과 함께 미타찬과 관음찬이라는 두곡의 불가를 공연 도중에 여기들이 창사처럼 노래로 불렀다. 따라서 원래의 영산회상은 정재 창사처럼 여기가 노래부른 일종의 성악곡이었다.

 그러나 원래 성악곡이었던 영산회상이 양란 이후 차츰 세속화됨으로 말미암아 '영산회상불보살'이라는 가사는 없어졌고, 결과적으로 기악곡이 되었다. 이렇게 기악곡화된 영산회상은 현행 줄풍류의 상령산에 해당된다. 조선후기 풍류방의 율객들이 이 영산회상을 애탄하면서 여러 종류의 변주곡을 만들었고, 결국 9곡의 조곡으로 발전시켰다.

 

<17세기와 18세기의 영산회상>

 * 임진왜란(1592) 이후

양란 이후의 영산회상을 전하는 최초의 거문고 악보는 『신증금보』이다. 그런데, 『신증금보』의 영산회상에는 '영산회상불보살'이라는 가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17세기 후반의 풍류방에서 연주된 영산회상은 성악곡이 아니라 이미 세속화된 기악곡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신증금보』 소재의 영산회상은 현행 영산회상의 상령산에 해당한다. 거문고 이외에 이 영산회상이 어떤 향악기와 더불어 연주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유춘오악회의 경우로 보았을 때, 거문고 외에 가야금, 생황, 퉁소 등의 악기편성으로 영산회상이 연주되었으리라고 추정된다. 『신증금보』 소재의 거문고곡을 보면, 영산회상은 중대엽이나 삭대엽에 비해서 많이 연주되지는 않았다.

 

 * 18세기의 영산회상

 18세기 풍류방의 영산회상은 『한금신보』와  『어은보』에 전한다. 이 두 고악보의 영산회상은 모두 거문고 악보이다. 영산회상의 변주곡으로 보이는 영산회상 환입과 영산회상 제지라는 두 악곡이  『한금신보』에 전한다. 그리고 영산회상 갑탄이라는 변주곡이  『어은보』에 전한다.

 『한금신보』 소재 영산회상 환입의 '환입'은 우리말로 '도드리'라는 뜻의 한문명이고, 영산회상 제지의 '제지'는 가락더리 뜻의 한문명이다. 그러므로 이 두 악곡은 영산회상의 최초 변주곡이라고 볼 수 있다. 영산회상 제지는 영산회상의 첫 번째 변주곡이고, 영산회상 환입은 영산회상의 두 번째 변주곡이다. 그러나 영산회상 제지와 영산회상 환입이 하나의 독립된 변주곡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두 변주곡은  『어은보』의 영산회상갑탄과 같은 변주곡의 모체이고, 영산회상에서 파생된 최초의 변주곡이다.

 『어은보』에 전하는 영산회상 갑탄의 '갑탄'은 거문고의 유현 4괘로 연주된 영산회상을 유현 7괘로 높게 변주시켜서 연주한 영산회상을 말한다. 이 영산회상 갑탄은 현행 영산회상의 둘째곡인 중령산이다. 영산회상 갑탄(중령산)이 출현한 사실은 18세기 풍류방의 율객들이 영산회상(상령산)을 애탄하였기에 하나의 독립된 새로운 변주곡을 파생시켰다는 데 의의가 있다.

 원래 성악곡이던 영산회상은 17세기에 이르러 기악화되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풍류방의 율객들이 영산회상을 애탄하였기 때문에, 영산회상 환입, 영산회상 제지, 영산회상 갑탄과 같은 변주곡이 영산회상에서 파생되었다. 현행 영산회상의 중령산으로 밝혀진 영산회상 갑탄은 18세기에 발전된 영산회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변주곡이다. 다시 말해서, 18세기에는 영산회상을 삭대엽처럼 풍류방의 율객들이 애탄하였기 때문에, 18세기 후반기부터는 영산회상의 변주곡이 다양하게 등장하였다.

 

 

 

< 19세기의 영산회상 >

 * 19세기 초

18세기 말기의 풍류방에서 연주된 영산회상의 여러 변주곡은 서유구의 『유예지』에 전한다. 비록 『유예지』가 19세기 초에 편찬되었을지라도, 그 고악보에 담긴 악곡은 18세기 말기에 연주된 음악이다. 19세기 전반기의 영산회상을 전하는 고악보로는 『유예지』 이외 『삼죽금보』가 있다. 먼저 『유예지』에 전하는 영산회상의 여러 변주곡은 편의 상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째 부분은 영산회상, 세령산, 영산회상 이층제지, 영산회상 삼층제지 이상 4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되었다. 『유예지』의 영산회상은 현행 영산회상의 상령산, 세령산은 현행 중령산, 영산회상 2층제지는 현행 세령산, 그리고 영산회상 3층제지는 현행 가락더리에 해당된다. 세령산, 영산회상 2층제지, 영산회상 3층제지는 영산회상 갑탄 이후에 파생된 영산회상의 새로운 변주곡들이다.

 둘째 부분은 삼현회입, 삼현회입 2장두, 삼현회입 4장말, 이상 세 곡으로 구성되었다. 『유예지』의 삼현회입은 현행 삼현환입의 전신이고, 삼현회입 2장두와 4장말은 현행 하현환입의 모체이다. 다만 이 삼현회입이 어느 악곡에서 유래되었는지는 불확실하다. 이렇듯 현행 삼현환입과 하현환입의 모체가 이미 18세기 후반의 풍류방에서 연주되었다.

 셋째 부분은 염불타령, 육자염불, 타령, 군악유입타령, 우조타령, 군악타령 이상의 6곡으로 구성되었다. 이 6곡 중에서 염불타령과 육자염불은 현행 염불환입의 모체로, 타령, 군악유입타령, 우조타령은 현행 타령의 모체로, 그리고 군악 타령은 현행 군악으로 밝혀졌다. 비록 영산회상의 6곡은 현행 것처럼 독립 곡으로 발전되지는 못한 초기 형태의 변주곡에 불과하지만, 그 변주곡은 현행 영산회상이 어떻게 파생되어 오늘의 영산회상으로 발전되었는지를 보여준다.

 

 * 19세기 전반기

 『삼죽금보』 소재의 영산회상은 영산회상, 중령산, 소령산, 가락더리, 환입, 염불, 타령, 군악 이상 8곡으로 구성되었다. 이 『삼죽금보』의 곡명은 『유예지』의 곡명보다 현행 영산회상의 곡명에 한층 가깝다. 다만 『삼죽금보』의 영산회상은 현행 상령산이고, 소령산은 세령산이며, 환입은 삼현환입이어서 곡명이 서로 다를 뿐이다. 그렇지만 나머지의 중령산, 가락더리, 염불, 타령 이상 4곡명은 현행 곡명과 같다. 그런데 현행 하현환입의 명칭이 『삼죽금보』에는 없다. 그렇지만 『삼죽금보』 소재의 삼현환입 안에 하현환입의 곡이 모두 포함되었다. 그러므로 비록 『삼죽금보』에 하현환입의 명칭이 없지만, 실제로는 하현환입이 19세기 전반기에는 연주되었다.

 『유예지』 소재의 군악은 거문고의 유현 4괘로 연주되었다. 그렇지만 『삼죽금보』의 군악은 현행의 것처럼 유현 5괘로 장2도 높게 연주되었는데, 이 점이 19세기 군악의 변화양상이다. 이 변화양상은 현행 줄풍류의 군악 틀거리가 『삼죽금보』 시절에 이미 갖추어졌음을 입증한다. 다시 말하자면, 영산회상은 19세기 풍류방에서 율객들의 애탄곡이었으며, 따라서 현행 영산회상의 8곡은 이미 19세기 전반기에 형성되었다.

 

 * 19세기 후반기

 이 시기의 영산회상을 전하는 고악보로는 윤용구의 『현금오음통론』과 『학포금보』가 있다. 『현금오음통론』 소재의 영산회상은 본령산, 중령산, 세령산, 가락환입, 상현환입, 하현환입, 염불, 타령, 군악과 변조 이상 9곡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학포금보』의 영산회상은 대령산, 중령산, 세령산, 가락환입, 삼현환입, 하현환입, 염불, 타령, 군악과 권마성 이상의 9곡으로 구성되었다.

 두 고악보의 영산회상이 현행 줄풍류처럼 9곡으로 구성된 점에서 공통적이다. 『삼죽금보』에 없던 하현환입의 명칭이 『현금오음통론』과 『학포금보』에 출현한 사실이 주목된다. 왜냐하면 19세기에는 삼현환입의 뒷부분으로 연주된 하현환입의 명칭이 19세기 후반기의 고악보에 출현함으로써, 현행 줄풍류가 19세기 후반기에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행 줄풍류의 곡명과 비교할 때, 두 고악보 소재의 곡명이 현행의 것과 일치하지 않는 것도 있다. 예컨대, 『현금오음통론』의 본령산과 『학포금보』의 대령산은 현행의 상령산이다. 그리고 『현금오음통론』의 군악과 변조 및 『학포금보』의 군악과 권마성에 나오는 '변조'와 '권마성'은 현행 군악의 뒷 부분에 해당한다. 이렇듯 19세기 후반기에는 군악의 곡명이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되어있다. 그렇지만 현행 군악에서는 그런 구분이 없어졌다.

 19세기 후반기 풍류방의 율객은 하현환입을 영산회상을 마지막 변주곡으로 만들어 삼현환입과 염불환입 사이에 삽입시켰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행 줄풍류처럼 완전한 조곡의 형태를 갖추었다. 이렇게 9곡으로 구성된 현행 줄풍류의 틀거리는 19세기 후반기에 완전히 형성되었다. 요컨대, 19세기에 이르러 영산회상은 가곡과 더불어 풍류방의 중요한 연주곡목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당시 풍류방의 율객들이 18세기에 형성되기 시작한 영산회상의 변주곡을 더욱 발전시켰다. 9곡으로 구성된 현행 줄풍류의 각 곡명과 틀거리는 19세기 후반기에 완전히 갖추어졌다. 이렇게 형성된 줄풍류가 구한말의 조선정악전습소와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를 거쳐서 현재 국립국악원에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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