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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음악사] 성악곡의 갈래: 가곡

by 정적인 바둑이 2022.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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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의 새로운 전개: 가곡>

1) 중대엽과 삭대엽의 역사적 변천

  "요사이 연주되는 대엽의 만, 중, 삭은 모두 정과정의 삼기곡에서 나온 것"이라는 『양금신보』 에 보이는 글은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이 역사적으로 서로 관련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전기의 만대엽이 중대엽처럼 5장형식의 성악곡임을 이미 앞장에서 살펴보았다.

 이득윤의 『현금동문유기』 중 "평조만대엽은 여러 곡의 조종으로서 종용하고 한원하여 자연스럽고 평담하다"는 글에 의하면, 임진왜란 이전의 만대엽은 조선전기에 연주된 성악의 한 갈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17세기부터 만대엽이 점차적으로 하향추세였음을 여러 고악보가 입증한다. 즉 임진왜란 이전의 『금합자보』에는 만대엽만이 전한다. 그렇지만 『양금신보』에는 만대엽과 중대엽이 함께 전하며, 『현금동문유기』와 『신증금보』에서는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이 모두 출현한다.

 17세기부터 나타난 중대엽과 삭대엽은 음악사적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는 만대엽 이후에 등장한 중대엽과 삭대엽은 조선전기와 조선후기를 구분할 수 있는 준거가 되기 때문이다. 『양금신보』 소재의 평조, 우조, 평조계면조, 우조계면조라는 네 악조의 중대엽은 중대엽이 17세기에는 만대엽이나 삭대엽보다 성행된 성악곡이었음을 입증하는 증거이다.

 

 그러나 숙종 무렵으로 추정되는 『백운암금보』와 『한금신보』 및 『신증금보』에는 중대엽 제1, 제2, 제3, 그리고 삭대엽 제1, 제2, 제3이라는 파생곡이 출현한다. 이 파생곡에 의거하였을때, 17세기 후반에는 중대엽과 삭대엽이 모두 서로 비슷하게 성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대소장금보』에 제1, 제2, 제3의 중대엽에 얹어서 노래를 부르는 9편의 가사가 전하기 때문에 17세기 말과 18세기 초 무렵에는 중대엽이 매우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중대엽의 음악형식은 만대엽과 삭대엽처럼 5장형식이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삭대엽이 중대엽보다 성행하였다. 삭대엽이 중대엽보다 성행한 사실은 이익의 『성호사설』에 전하는 다음의 글에서 확인된다. 영조때 삭대엽이 중대엽보다 성행한 까닭은 아래의 인용문에 기록되었듯이, 그 당시 사람들이 느린 노래보다 빠른 노래를 좋아했기때문이었다.

 

 우라나라의 가사에 대엽조가 있는데, 형식이 다 같아서 길고 짧고의 구별이 없다. 그 중에 느린 것, 중간 것, 빠른 것의 세 가지 조가 있는데, 이것은 본래 심방곡이라고 하였따. 만대엽은 너무 느려서 사람들이 싫어하여 폐지된지 오래이고, 중대엽은 약간 빠르긴 하나 역시 좋아하는 사람이 적고, 지금 통용되고 있는 것은 삭대엽이라는 곡조이다.

 

 18세기 중엽부터는 삭대엽의 변주곡이 파생되었는데, 이는 삭대엽이 중대엽보다 성행했기 때문이다. 느린 노래보다 빠른 노래나 악곡을 좋아한 18세기 당시 사람들의 취향이 가곡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다른 갈래의 음악에서도 발견되는 조선후기 음악양식의 공통된 특징이다.

   조선전기의 만대엽은 17세기에 이르러 하향의 추세를 보이다가 18세기에 이르러 자취를 감추었다. 한편 17세기 전반부터 등장한 중대엽은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전반기에 성행하였다. 그러나 18세기부터 등장한 삭대엽에 밀려서 중대엽은 하향길에 들어섰다. 이러한 역사적 변천과정을 거쳐 삭대엽이 18세기부터는 풍류방의 중심을 차지하였고, 그 후 삭대엽의 많은 변주곡이 파생되면서 오늘날의 가곡 한 바탕이 형성되었다.

 

2) 가곡의 성장과 발전

 현행 가곡의 직접적인 모체가 되는 삭대엽은 17세기 이후 3백여년의 오랜 변천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을 거듭하였다. 삭대엽의 역사적 변천과정은 가곡의 성장과 발전을 의미한다.

 

(1) 17세기의 가곡

 광해군부터 숙종 중엽까지의 삭대엽을 전하는 거문고악보로는 『양금신보』, 『현금동문유기』, 『신증금보』가 있다. 17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는 편자 미상의 『한금신보』와 『신작금보』에도 삭대엽이 전한다. 이상의 다섯 거문고악보에 전하는 삭대엽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양덕수의 『양금신보』에는 삭대엽 악보가 없다. 그 대신에 삭대엽이 무용반주로 쓰인다는 기록만이 『양금신보』에 전한다. 삭대엽 악보는 이득윤의 『현금동문유기』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즉 평조 삭대엽과 우조 삭대엽, 허사종의 삭대엽, 그리고 일명 자자대엽의 삭대엽, 이상 세 종류의 삭대엽 악보가 『현금동문유기』에 전한다. 17세기 전반기만 해도 삭대엽이 무용반주로 연주되었을 뿐이고, 삭대엽은 중대엽에 비해서 풍류방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성악곡이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기에 이르면서 삭대엽이 차츰 풍류방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변주곡이 파생되었다. 『신작금보』에 나오는 초수대엽, 이수대엽, 삼수대엽 및 『신증금보』 소재의 삭대엽 제1, 제2, 제3은 모두 삭대엽에서 파생된 변주곡이다. 삭대엽에서 파생된 이와같은 변주곡들은 17세기 후반부터 차츰 풍류방의 가객들이 가곡을 애창하였음을 입증한다.

  17세기 가곡의 성장과정은 전반기와 후반기의 두 시기로 구분된다. 17세기 전반기 삭대엽은 중대엽의 그늘 아래서 차츰 고개를 내밀면서 가곡의 원형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17세기 후반기에 이르러 풍류방의 가객들에 의해서 초수대엽, 이수대엽, 삼수대엽 또는 삭대엽 제1, 제2, 제3의 명칭으로 삭대엽의 변주곡이 파생되었다.

 

(2) 18세기의 가곡

 숙종 말엽부터 정조때까지의 1세기 동안에 애창된 18세기의 가곡을 전하는 고악보로는 『한금신보』, 『어은보』, 『연대소장금보』 등이 있다. 그리고 가곡의 노래가사집으로는 김천택의 『청구영언』과 김수장의 『해동가요』가 있다.

 『한금신보』에 전하는 삭대엽 제4는 17세기 후반기의 가곡에서 새로 파생된 18세기 초의 변주곡이다. 『한금신보』 소재의 삭대엽 제1, 제2, 제3, 제4는 현행 가곡의 우조 초수대엽, 두거, 삼수대엽, 이수대엽으로 밝혀졌다. 삭대엽 제4는 18세기 전반기에 출현한 가곡의 새로운 변주곡이었다.

 18세기 후반기에 이르면서 삭대엽의 새로운 변주곡이 파생되었다. 새 변주곡은 농, 낙, 편 계열의 곡목들이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의 가곡을 전하는 『유예지』 소재의 농엽, 우락, 계락과 같은 변주곡이 모두 가곡의 농, 낙, 편 계열에 드는 파생곡이다. 농 계열의 변주곡은 그 후에 현행 가곡의 언롱, 우롱, 평롱으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우락, 계락처럼 낙 계열의 변주곡은 후에 언락, 편락, 환계락으로 발전되었으며, 편 계열의 변주곡은 편락, 언편, 편수대엽으로 발전되었다.

 편수대엽, 언편, 편락처럼 편 계열에 드는 삭대엽의 변주곡에서는 16박의 기본장단이 아니고, 변용된 10박의 편장단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편 계열 가곡의 가사는 모두 정형시조가 아닌 사설시조이다. 10박의 편장단에 맞추어 가객이 사설시조의 가사를 촘촘하게 엮어서 노래부르기 때문에, 엮음의 뜻을 지닌 '편'이라는 한자를 변주곡에 붙였다. 따라서 편수대엽은 우리말로 '엮음자진한잎'이다.

 이렇듯 18세기에 현행 가곡의 모체인 삭대엽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천택과 같은 탁월한 가객이나 김성기와 같은 특출한 율객이 풍류방에서 함께 어울려 풍류활동을 전개한 시사나 가단이 있었다. 1728년 정윤경이 김천택의 『청구영언』을 위해서 써준 다음의 서문에 의거하여 풍류활동의 근거지였던 가단에 대한 개관의 실마리는 풀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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