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음악사] 고대 일본에 전파된 삼국악

정적인 바둑이 2022. 5. 1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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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백제, 신라는 자국의 향악을 바탕으로 외래음악을 수용하여 서로의 색깔이 뚜렷한 음악문화를 각기 형성하였다. 삼국은 각기 자기 나라의 악사와 악생을 왜국조정에 파견하여 삼국악을 전파하였는데, 그 삼국악이 일본 역사서에 나오는 고마가쿠, 구다라가쿠, 시라기가쿠, 이상의 산칸가쿠이다. 여기서 '고마' 곧 '고려'는 고구려를 말한다.

 삼국의 악사와 악생들이 고대 일본의 궁중음악문화 형성에 크게 공헌한 점에서는 서로 공통적이지만, 특히 백제는 삼국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왜국에 끼쳤다. 백제악사의 해외활동에 관한 기록이 다른 두 나라에 비해서 자세하게 『일본서기』에 전한다.

 <백제악과 백제악사>

1) 왜국에 파견된 백제악사

  백제악 관련의 기사가 최초로 일본 역사서에 기록된 때는 554년인데, 이 최초의 기록이 아래에 인용된 문장이다. 이렇게 6세기부터 백제악은 일본에서 구다라가쿠라고 불리게 되었고, 고마가쿠 및 시라기가쿠와 함께 현행 일본 궁중음악인 아악, 곧 가가쿠의 뿌리 중 한 갈래가 되었다.

 

  554년 2월 백제는 음악인 시덕 삼근, 계덕 기마차, 계덕 진노, 대덕 진타를 파견하였는데, 모두가 대치시켜 달라는 요청에 의거한 것이다.

 

 『일본서기』의 인용문 중에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첫째가 네 백제악사 "모두가 대치시켜 달라는 요청에 의거한 것"이라는 문구이고, 둘째는 네 악사가 백제의 무슨 악기를 가르쳤는가에 대한 의문이며, 셋째는 백제악사의 관등이다. 단 둘째 의문사항은 다음의 소항목에서 서술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삼근, 기마차, 진노, 진타 이상의 백제악사 모두는 554년 이전에 왜국조정에 파견되었던 백제악사가 대치시켜 달라는 요청에 따라서 그들과의 임무교대를 위해서 백제에서 새로 파견한 악사들이다. 다시 말하자면, 554년 이전에 백제악사가 이미 왜국조정에 파견되었고, 그들과의 임무교대로 새로 파견된 백제악사가 바로 윗 인용문에 나오는 삼근, 기마차, 진노, 진타다. 왜국에서 일정한 기간의 파견근무를 마친 사람을 교대시킨 사례가 553년 6월에도 있었음은 『일본서기』 권19에 전한다.

 네 백제악사의 시덕, 계덕, 대덕이라는 세 관등은 백제사회에서 차지한 악사의 사회적 지위를 가늠해볼 수 있는 단서이다. 시덕은 백제 16관등 가운데 제8관등, 계덕은 제10관등, 그리고 대덕은 제11관등의 위계명이다. 제8관등에서 제11관등 사이의 관리들은 붉은색 비단의 관복을 입었다. 붉은색 관복을 입은 백제악사들은 푸른색 관복을 입은 제12~제16관등의 관리와 자주색의 관복을 착용한 제1~제6관등의 관리 사이에 속하는 관리들이었으므로, 백제악사의 사회적 지위는 음성서 소속의 신라악사처럼 높았다.

 이 네 백제악사 이외의 여러 악사들이 본국의 왕립음악기관에 소속되었음은 물론이고, 그들이 악공과 악생을 지도하고 가르쳤다.

 

2) 일본에 전한 백제악기와 기악

 (1) 백제악사가 전한 악기와 춤

  『일본서기』에는 네 백제악사가 무엇을 가르쳤는지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후기』 권17에는 백제악사를 포함한 삼국악사들이 가르친 악기명과  춤 관련 기록이 다음과 같이 전한다.

 

 809년 3월 가가쿠료에서 정하기를, (중략) 고려악사 4명은 횡적, 군후, 막목, 춤 선생이고, 백제악사 4명은 횡적, 군후, 막목, 춤 선생이며, 신라악사 2명은 금과 춤 선생이다.

 

 네 백제악사가 가르친 임무는 횡적, 군후, 막목, 춤 이상 네 가지였다. 횡적은 글자의 뜻대로 젓대처럼 가로로 잡고 부는 관악기의 일종이다. 『고사유원』「악무부」권30에 의하면, 구다라부에라고 불렀던 백제의 횡적은 고구려의 횡적인 고마부에 및 당나라의 요코부에와 명칭상으로 구분되었다.

 백제악사가 가르친 군후를 공후로 해석한 일본 음악학자는 그 공후를 백제금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한국 음악학자는 군후를 거문고로 해석하였다. 백제의 군후가 고구려의 군후처럼 거문고로 밝혀졌기 때문에, 자국의 거문고악사를 일본조정에 파견한 9세기에 앞서 백제가 이미 고구려의 거문고를 수용하였다. 백제의 거문고를 일명 구다라고토라고 명명한 것은 백제악사의 거문고였기 때문이고, 또한 그 거문고를 고구려악사의 군후와 구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백제금이라고 명명하였다.

 일본말로 마쿠모라는 막목의 정체가 무엇인지 불분명하여 학계에서 오현, 지, 향피리 중에 하나일지 모른다고 추정되었다. 또한 막목이 관악기의 일종일지 모른다고 추정되기도 하였으며, 서역지방의 원시적 피리의 일종인 맘일 것이라는 설도 있고, 현행 고마가쿠의 히찌리키로 보았다. 모든 추정의 공통점은 막목이 관악기의 일종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성과에 따르자면, 막목은 고구려의 대표적인 관악기 중 하나인 도피피리로 해석되었다. 따라서 백제의 막목, 곧 도피피리는 군후처럼 자국의 막목악사를 일본조정에 파견한 9세기에 앞서 백제가 이미 고구려의 도피피리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2) 미마지가 전한 기악

  왜국에 파견한 백제악사의 해외활동 이외에도 백제사람 미마지는 612년에 기가쿠를 일본에 전해준 인물로 유명하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일본에 귀화한 미마지가 사쿠라이에 소년을 모아 오나라에서 배운 기악을 소년들에게 가르쳤다. 그 당시에 사용된 기악의 가면이 현재 도다이지에 보존되고 있다.

『교훈초』에 의하면, 기악무는 적, 삼고, 동박자 같은 악기반주에 맞추어 가면을 쓰고 춤춘 탈춤이었다. 미마지가 전한 기악이 우리나라 양주산대극의 가면극과 역사적으로 관련되었다는 학설이 오래 전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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